이감독의 영화읽기

이감독의 영화읽기

내 인생의 영화-이소룡 영화

페이지정보

글쓴이 이정국 날짜17-07-18 11:39 조회1,342 댓글2

본문

<편지>의 영화감독 이정국의 이소룡 회고기

 * 내 인생의 영화 <정무문>(1972, 精武門) 

  언젠가 (집시의 시간)을 만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이소룡(부르스 리)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의아스러움과 함께 동지를 얻은 듯한 생각에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영화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에는 고다르 같은 진지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자극받아 영화를 하게 되었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소룡 영화 같은 무술영화를 좋아하다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영화감독이 된 것은 전적으로, 이소룡 영화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적어도 고교시절 그의 영화 <정무문>(1972) <용쟁호투>(1973) 등 그의 영화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이야말로 그 완성도와 예술성을 떠나서 순수하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영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당시 이소룡을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그에게 동일화돼 모든 무술연기를 비슷하게 흉내내기까지 했다. 중학교 시절 태권도 선수였을 만큼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공부를 때려치고 이소룡처럼 뛰어난 무술인이 되어볼까 고민도 했다. 그래서 쌍절곤 다루는 법을 영화를 보면서 배우고 무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만한 스승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다. 결국 운동을 하기 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운동을 포기하는 대신 공부를 해서 연극영화과에 가게 되었고 영화를 통해서 무술의 세계를 다뤄보고자 영화감독이 되었다(물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다루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만들 예정이다).

  몇 편 안 되는 이소룡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정무문>이었다. 중국의 일부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정무문이라는 도장 출신의 진친(이소룡)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한 스승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섰다가 일본인들과 그들이 고용한 무술인들을 상대로 결투를 벌여 이기지만 결국은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스토리는 당시엔 흔했던 항일 무술영화 내러티브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핵심은 대부분의 이소룡 영화가 그렇듯이 스토리보다는 이소룡이 연기하는 리얼한 무술액션이다. 스스로 개발한 독특한 기합소리, 쌍절곤이라는 독특한 무기 사용, 그리고 무용처럼 시각적으로 화려함을 보여주는 무술동작과 신들린 듯한 표정 연기 등은 기존의 무술영화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 것은 대부분 각본이나 감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소룡 그 자신에 의해 개발되고 독창적으로 표현되었다. 지나치게 그의 무술연기에 의존하다 보니 대본이나 연출은 어설펐다. 영화에 문외한이었던 고교 시절의 나에게도 그런 문제점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때 내가 만들어도 저렇게 철학이 없는 진부한 스토리로 만들진 않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면서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감독이 되고난 뒤 나는 종종 이소룡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사춘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힘은 결국 이소룡이라는 배우의 강렬한 매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 그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들은 뛰어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를 다시 볼 땐 스토리는 무시하고 액션장면만 따로 편집해서 본다.  이소룡 영화는 영화에서 액션을 통한 극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그의 영화 중 나를 오랫동안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이미지 중 하나는 <정무문>의 라스트신, 즉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기합을 지르며 뛰어 날아오르는 순간 공중에서 정지되는 이소룡의 이미지다. 죽음에 대해서조차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듯한 그런 이미지는 내 자신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나는 요즘 영화가 한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데는(특히 청소년들에게) 스토리보다는 이미지가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고교시절에 소위 걸작이면서 내러티브가 뛰어난 걸작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벤허>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들은 단체관람을 통해 많이 보았지만 그 당시엔 내용도 제대로 이해를 못했고 실질적인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이소룡의 대부분 영화들은 컬트영화로 분류된다. 그 위력은 의외로 광범위하고 끈질기다. 그는 동양인으로선 최초로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우상이 된 배우이다. 그가 죽은 이후 홍콩영화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조차도 수없이 많은 영화(배우)들이 그를 흉내 내고 패러디했으며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소룡의 인용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부기 나이트>(1997)라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이소룡 사진을 자기 방에 붙여놓고 수시로 그의 무술 동작을 흉내 내며 스타의 꿈을 키운다. 결국 포르노 스타가 된 그는 좌절을 겪을 때마다 여전히 이소룡 흉내를 내며 자기를 가다듬는다. 어쩌면 그에게 "내 인생의 영화"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처럼 이소룡 영화 중 하나를 꼽을지도 모른다.  (2001년, 잡지 게재 글)

댓글목록

gisff님의 코멘트

gisff 작성일

삶의 전환점이 돨만한 일들이 얼마나 생길까요?  그 순간은 커다란 감동이지만 곧 잊혀져 평상시 삶을 살아가지요.  실타래처럼 얽힌 세상사속에서 순간의 감동을 꽉 부여잡고 버티어 내는 것이 곧 장인 정신이 아닐까요

gisff님의 코멘트

gisff 작성일

모처럼 들어와 이정국감독님의 이소룡회고기를 보고 공감이 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