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노인영화제 최우수상 ‘사랑해요, 아버님’ 전양수 감독이 말하는 소통

 

월간노동세상-2010-1116

 

사랑아, 늙기는 늙어도 죽지는 않는구나

초인종이 울리고, 배부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묵직한 가방을 받아든다. 아내가 죽은 뒤 아들부부와 함께 살게 된 아버지. “혼자 있는 것이 편한데 너희가 불편하겠구나.”가정에서 겉도는 아버지는 어두운 방안에서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보낸다. 방바닥에 있던 다른 핸드폰에 ‘딩동’ 문자메세지가 도착한다. 아버지가 죽은 아내의 핸드폰과 자신의 핸드폰으로 홀로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던 게다.“여보 잘 지내고 있소? 사랑하오.”, “저는 잘 있어요. 당신은 어때요?”저녁 밥상에서 며느리는 걱정한다. “휴대폰이 두 개라 휴대폰비가 많이 나오는데..” 휑하니 방으로 들어가며 아버지 한 마디 한다. “네 어머니 유품인데…”어느 날부터인가 바람을 쐬러 나간다는 핑계로 폐지를 줍고 다니는 아버지. 그 사실을 모르는 며느리는 반 접힌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나가버린다. 일이 끝난 아버지는 사과 삼천 원 어치를 사들고 귀가한다. “네 생각나서 샀다.”아버지가 폐지를 줍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며느리는 곤란해 하고,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로 취직해 출근한다. “저녁에 아버님 좋아하는 추어탕 해놓을게요.”라며 배웅하는 며느리와 “고맙다.”라는 아버지는 이제 어색하지 않고 밝다. 집안 일을 하던 며느리는 어머니의 유품인 핸드폰으로 아버지의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하고 답을 보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버님

지난 10월1일부터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3회 노인영화제가 열렸다.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관한 이 영화제는 미디어 시대에 문화의 객체로 물러나 있는 노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주최측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기력 없고, 첨단 기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노인들의 욕구와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노인으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제한하는 문화적 차별로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일조하고자 2008년 하반기에 전국 최초로 서울노인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제2회부터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나이 제한없이 참여할 수 있는 ‘노인주제부문’과 61세 이상의 어르신이 참여할 수 있는 ‘자유주제부문’으로 진행되었다. 올해 제3회 노인영화제에는 총25편이 본선에 진출해 전양수 감독(64)의 ‘사랑해요, 아버님’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짧은, 그러나 흔하지 않은상영시간이 17분으로, 이 영화는 짧다. 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랜 여운이 남고 흔하지 않은 감성을 자극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혼자 문자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그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지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진하게 전달된다. 바람쐬러 나간다는 아버지에게 내민 며느리의 반 접은 만 원짜리 지폐는 어르신 세대와 소통하려는 젊은 세대의 노력을 상징한다. 또,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며느리를 생각하며 사간 아버지의 3천원 어치 사과는 젊은 세대에 대한 어르신 세대의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다. 만 원짜리 지폐와 사과는 서로의 노력을 상징하지만 조금씩 어긋나는데, 소통의 노력과 결과가 상호적이 되는 순간은 아파트 경비로 출근한 아버지가 죽은 아내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그것에 며느리가 답할 때 그 소통이 결실 맺었음을 보여준다. 일상적이고 별것 아닌 것에서 소통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60대, 은빛 날개를 달고

월간노동세상-2010-1116-1전양수 감독은 원래부터 영화를 업으로 하지는 않았다. 건축 관련 일을 하던 전 감독은 은퇴 후 컴퓨터 관련 교육을 받다가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 단편영화제작교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참여했다. 단편영화제작교실의 구성원은 이전에 영화 관련 경험이 있는 2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60세가 넘은 노인은 등록 자체가 어려웠다. 전 감독이 센터 측에 건의하고 설득한 끝에 겨우 들어가기는 했지만 젊은 사람들의 이해력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웠다. “일단,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화라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특히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많이 힘들었는데 처음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이라서 많이 더듬거렸지요. 하나 하나 대사에 영상을 생각하고 써가면서 그림을 그려갔습니다.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었어도 촬영까지가 쉽진 않았습니다. 지도해 주는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지요.”라고 전 감독은 교육받을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그렇게 해서 그 교육과정의 수료작으로 “사랑해요, 아버님”이라는 수작이 탄생했다. 촬영과 녹음을 제외한 시나리오, 편집, 연출을 모두 전 감독이 맡아했고, 주인공인 아버지 역은 친목 모임의 지인인 김연주(75)씨가 맡아주었다.처음부터 노인영화제에 출품할 생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서울노인영화제가 있다는 것은 영화공부를 하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고요, 지난 어버이날 SBS광주방송(KBC)에서 방송된 다음 여러분들이 서울노인영화제에 참여할 것을 권유 해서 참여했죠.” 이미 지난 5월3일, SBS광주방송의 시청자 작품방영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바 있는 이작품은 주인공 김연주 씨를 ‘광주의 스타’로 만들었다.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전 감독은 “영화 속 아들과 며느리는 전문배우이지만 주인공인 아버지역을 맡은 김연주 씨는 전혀 경험이 없는 분이어서 애를 좀 먹어어요. 처음에 출연을 망설이던 걸 개인 친분으로 설득해서 겨우 촬영에 들어갔는데 나이가 많으셔서 대사를 잘 외우지 못하고 연기도 어색해 NG를 몇 번 냈지요. 또 극중 며느리가 실제로 임신 5개월째 되는 새댁이어서 밤12시가 넘도록 야간 촬영을 해야 했을 때 많이 힘들어 했답니다.” 라면서 영화속 뒷 얘기를 들려줬다.

 

얘들아, 아프게 사랑한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 감독이 들려줬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글에서 본 거예요. 영화 속 며느리가 직접 올린 글인데 딱 보고 너무 좋더군요. 이 시대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 같았습니다. 핵가족화로 부모가 소외되는 현실 속에서 다른 가정에 귀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어르신 세대가 가족공동체에 함께하면 보다 화목하고 인간적인 가족과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겠죠.”전 감독은 “젊은 세대가 어르신 세대를 불편해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때문이고, 어르신 세대가 젊은 세대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불편해 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이 나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불행한 것은 없거든요.”라면서 어르신 세대가 느끼는 소외감을 전했다.이러한 세대 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듯 ‘서로 노력하는 것’이 정답이다. 여기에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임을 인식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사랑이니, 이해니, 이러한 것들은 그 다음이다.

 

월간노동세상-2010-1116-2

 

노인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

전 감독은 어르신 세대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영화에서 아버지와 며느리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소통한 것처럼 “어르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르신을 위한 교육기관 및 강의를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르신들이 살면서 쌓은 지식과 경험, 인생의 노하우를 발휘, 전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해요. 남아도는 ‘잉여 인간’이 아니라 사회의 밑거름이 돼 더욱 풍요로운 사회문화를 창출하는 하나의 군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전 감독도 이에 일조하고자 광주의 여러 기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포토샵, 동영상 제작, 인터넷 등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왜?”라는 질문에 전 감독은 “새로운 것에 도전함으로써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당당히 대답했다.이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요즘 젊은이들 취업난 때문에 많이 힘들겠죠. 하지만 자기개발이 부족하고 성실함 또한 경시해요.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오늘도 편하게가 아닌, 열심히 살고 있는 64세 청춘이 외쳤다.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데 문화를 전수할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는 것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 젊은 세대도 어르신들의 문화세례를 받고 싶다.

출처:사회 – “너희는 늙어봤냐? 우리는 젊어봤다.” from 월간노동세상(http://laborworld.co.kr)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